![]() |
/로이터=뉴스1 |
사실상 미국과 교역에서 흑자를 보는 국가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대부분 상품이 무관세인 한국에도 환율이나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을 빌미로 상호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대미 교역 660억달러 흑자국가다.
"면제·예외 기대 말라"…무역적자 순서대로 검토
![]() |
/그래픽=김다나 |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이날 "미국에 부과되는 그 이상도, 이하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세금이나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도 똑같이 부과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평평한 경쟁의 장을 원한다"며 "면제나 예외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는 오는 4월1일까지 무역 상대국의 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을 두루 검토해 국가별로 차등화된 관세율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러트닉 지명자는 "4월1일까지 구체안이 완료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즉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가 큰 나라부터 들여다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세금·불공정 관행 모두 고려"…국가별 차등부과
![]() |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사진제공=현대자동차 |
이 당국자는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환율 정책,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기타 관행도 고려 요인으로 꼽았다.
단순히 상대국의 관세만이 아니라 미국 업체의 수출을 제한하는 비관세 장벽도 정조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관세 장벽의 사례로 자동차 인증제도를 콕 찍어 언급했다. 자동차 인증제는 각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가 일정한 안전, 환경, 품질 기준을 충족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다. 인증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려 미국 자동차 수출에 상당한 애로가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다.
한국 '환율 관찰 대상국' 재지정…상호관세 피하기 어려울 듯
![]() |
/그래픽=김지영 |
백악관 당국자는 "중국 같은 전략적 경쟁자든 유럽연합(EU)이나 일본·한국 같은 동맹이든 상관 없이 모든 나라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며 "(미국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더 높은 비관세 장벽을 세우면서 앞으로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우받을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지난해 사상 최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데다 지난해 11월 미 재무부의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됐다는 점에서도 트럼프발 무차별 관세 전쟁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1년만에 다시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한국이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된 건 대미 무역 흑자가 150억 달러가 넘는 데다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의 3% 이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법에 따라 교역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의 환율 정책을 평가해 일정 기준에 따라 심층분석국이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외교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괄적으로 같은 관세를 매기는 보편 관세로는 무역 적자 축소와 자국 산업 보호 등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주요 타깃 국가와 일대일 협상에 나서는 상호 관세로 그물망을 촘촘하게 만들어 대처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지난해 1조1989억달러(약 1737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과 비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는 카드까지 꺼내든 만큼 대미 무역흑자국은 상호관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EU 미국산 車에 부가세 20%, 사실상 관세 30% 수준"
![]() |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부가가치세를 관세로 사용하는 국가를 우선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우회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캐나다·멕시코·베트남 등을 거쳐 미국으로 수입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원재료와 완제품을 가리지 않고 오는 3월13일부터 일괄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캐나다 등을 거쳐 우회적으로 미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덤핑 철강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관세 추가 발표 계획을 예고한 데 이어 백악관이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확정한 반도체 보조금 관련 법을 재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업계에서는 셈법이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시설을 신설하기로 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대하 보조금이 줄어들거나 철회될 경우 글로벌 생산·사업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협상 여지는 남겨…"공개입찰 시작된 것"
![]() |
/그래픽=이지혜 |
외교가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를 길들이는 데 활용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많이 내거나 정치적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에 대해선 국가별 상호관세로 위협하고 반도체와 바이오 등 전략 품목을 수출하는 나라를 상대로는 품목별로 상호관세를 매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이유로 관세를 무기로 교역 상대국을 압박해왔다. 지난 4일 중국에 10%의 추가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10일에는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예외 없이 25%의 관세를 다음달 12일부터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상호관세 부과 방침까지 발표하면서 국제 무역질서의 혼돈이 가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회계법인 BDO 인터내셔널의 데이먼 파이크 연구원은 "세계관세기구(WCO) 소속 181국마다 관세는 모두 다르다"며 "(상호관세 부과는) 거의 AI 프로젝트와 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