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담보 1조 8천억 대출남: 인도 다이아몬드 황태자, 니라브 모디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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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새
작성: 2024.09.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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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11일, 인도 현지 신문에 작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인도의 금융수사국(Directorate of Enforcement)이 국외 도피 중인 금융 사기범 니라브 모디(Nirav Modi)의 재산 약 45억  원(2억 9,750만루피)을 새롭게 찾아냈다는 뉴스였다. 신문 기사에는 인도 정부가 그에게서 여태까지 압수한 자산 규모만 1,000억 원(69억 2,900만 루피)을 훌쩍 넘어선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다이아몬드 거래상이 도대체 얼마나 큰 금융 범죄를 저질렀으면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회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도 정부가 회수해야 할 돈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문제적 남자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명암과 오욕으로 점철된 인도 보석 산업의 이면을 살펴보자.

 

유명 보석상 외삼촌에게 전수받은 경영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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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브 모디 매장 내부

 

2016년 9월, 영국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스퀘어(St. James Square)와 고급 주택가인 메이페어 구역 사이에 위치한 올드 본드 스트리트(Old Bond Street)에 새로운 보석 매장이 문을 열었다. 2014년부터 2년 동안 뉴델리, 뭄바이, 뉴욕, 홍콩에 이어 다섯 번째 개장한 매장이자 유럽에서는 첫 번째로 문을 여는 니라브 모디(Nirav Modi)의 매장이었다.

 

보석업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이 무명의 다이아몬드 거래상은 1972년 매우 전통적인 인도 구자라트주의 보석상 가문에서 태어났다. ‘인도처럼 못 사는 나라에서 웬 보석산업?’이라고 생각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도가 못 살기 때문에 보석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 러시아, 호주 등 전 세계 주요 다이아몬드 산지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 원석의 약 90%가 인도에서 가공된다. 구자라트에 있는 ‘다이아몬드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수라트가 다이아몬드 가공업의 중심지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약 100만 명이 다이아몬드 가공업에 종사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절단(cutting) 및 광택(polishing) 작업 등 부가가치가 낮은 초기 가공작업이 주로 이루어진다. 인도처럼 인건비가 싼 저소득국가에 딱 어울리는 생산공정이다. 또한 인도의 보석 가공업은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촘촘하게 얽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위되는 산업이며,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적이다. 한마디로 명예와 신용에 따라 거래가 이루어지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가 가진 혈연 중심적, 카스트 중심적 사회경제 체제와 맞아떨어진다.

 

다시 니라브 모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니라브 모디는 가족과 함께 잠시 벨기에의 앤트워프(앤트워프 역시 유명한 보석 중개 시장이 있는 곳이다)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이후 뭄바이로 이주하여 외삼촌이자 인도 보석 가공업계의 거물인 메훌 초크시(Mehul Choksi) 밑에서 약 10년간 사업을 배운다. 남들의 이목을 피하며 근검절약하는 대다수의 보석상과는 달리 메훌 초크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회사인 기탄잘리 그룹(Gitanjali Group)을 인도 증시에 상장한 것도 모자라 최고급 양복과 호화 요트로 부를 뽐냈다. 걸핏하면 하청업자나 모델들에게 줄 돈을 떼먹었고 이로 인해 끊임없이 소송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도 사업 확장을 위한 야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용, 명예, 중용을 중시하는 인도 보석업계에서 메훌 초크시는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니라브 모디는 외삼촌의 화려하고 공격적인 경영방식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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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브 모디
출처 - <Zee News>
 
1999년, 니라브 모디는 삼촌으로부터 독립하여 파이어스타 다이아몬드(Firestar Diamond)를 창업하였고 꾸준히 사세 확장을 하여 한때 종업원이 2,000명에 이를 정도였다. 사업 초기에는 어음을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납기에 맞춰 현금 결제하는 방식으로 신용을 쌓아 나갔다. 종업원에게는 사내 유치원, 식당, 사내 의무실을 제공하는 등 다른 회사에 비해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했다. 종업원들은 물론, 그와 거래하던 거래상과 금융기관은 이런 니라브 모디를 철석같이 믿고 따랐다.
 
다이아몬드 산업에서 실제로 돈이 되는 공정은 가공된 다이아몬드를 디자인하고 세팅하여 판매하는 분야다. 대부분의 인도 보석상들은 하이엔드 분야에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니라브 모디는 이 분야에 진출하기로 작정했다. 자신의 독자 브랜드를 출범시키기로 한 것이다.
 
홍콩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니라브 모디
 
니라브 모디가 독자 브랜드를 출시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인도 다이아몬드 산업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남인도의 골콘다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크고 질 좋은 다이아몬드가 생산되는 광산으로 유명했다. 17세기까지 고급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거의 세계 유일의 광산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는 뛰어난 품질과 희소성으로 과거 수백 년간 전 세계 귀족 가문과 부호들의 사랑을 받았다. 메디치 가문을 포함한 유럽의 왕족과 명문가 중에서 골콘다 다이아몬드를 소장하지 않은 가문이 없을 정도였다.
 
1937년에 열린 영국 왕 조지 6세의 대관식에서 왕비(현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할머니)가 썼던 왕관을 장식한 코히누르(KohiNoor)가 가장 대표적인 골콘다 다이아몬드이다. 이외에도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리젠트 다이아몬드,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소장한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등이 모두 골콘다 다이아몬드다. 비록 지금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다 소진되어 채굴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아직도 보석업계에서 골콘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계의 롤스로이스’로 대우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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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히누르 다이아몬드
출처 - <Hindustan Times>
 
니라브 모디는 인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골콘다 다이아몬드를 기반으로 연꽃 모양의 화려한 목걸이를 재가공하여 2010년 홍콩에 있는 크리스티 경매장(Christie’s Auction)에서 360만 달러의 가격에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  세계 보석업계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남아 시장의 성공에 고무된 니라브 모디는 2011년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자신의 다이아몬드 제국을 전 세계로 넓혀나갔다.
 
서양 브랜드가 점령하고 있는 하이엔드 보석 시장에 진출하면서 니라브 모디는 인도라는 국가가 가진 신비한 이미지, 골콘다 다이아몬드가 풍기는 유서 깊은 전통, 여기에 동양적이면서 현대적인 당당함을 갖춘 인도 현대 여성의 이미지 등을 세련되게 조합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경제를 기반으로 ‘새롭고 현대적인 인도’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투사하고자 노력했고 그의 노력은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니라브 모디는 생산원가를 굳이 아끼려고 노력하지 않고 광고비를 포함한 다양한 비용도 과감하게 지출하곤 했다. 제국의 팽창에는 당연히 엄청난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에 상장되지도 않은 개인 회사가 어떻게 엄청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그의 자금 출처가 어딘지는 외부에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쉼 없이 회사를 확장했다. 2015년 9월부터 2017년 12월까지만 보아도 홍콩, 뉴욕, 런던, 마카오, 베이징, 싱가포르, 하와이에 새로운 매장을 열었다. 인도 출신의 진중하고 말이 없는 보석상 남편과 화려한 외모와 언변을 자랑하는 뉴욕 출신 아내(아미 모디, Ami Modi)는 전 세계 부호와 셀럽들의 마음과 지갑 속을 손쉽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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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뉴욕 매장은 2015년 9월에 오픈했는데, 개막식에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참석했고, 2016년 10월 홍콩에서 열린 플래그샵 오프닝 행사에는 우리나라의 인기 연예인 정지훈(비)과 중국의 배우 장쯔이를 초대하는 등 해당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연예인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케이트 윈슬렛과 나오미 왓츠, 모델인 로지 헌팅턴-휘틀리와 같은 셀럽들이 그의 다이아몬드를 즐겨 착용했고, 조나스 브라더스의 멤버인 닉 조나스의 아내로 유명한 인도 출신 영화배우 프리앙카 초프라가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홍콩, 런던, 뉴욕에 매장을 내고 세계적인 셀럽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티파니, 해리윈스턴, 카르티에, 쇼파드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경쟁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부채로 쌓아 올린 모래성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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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하지만 2014년을 전후하여 그의 사업에선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매장을 열면 처음 몇 개월간은 장사가 잘되는 듯했지만 금세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업실적을 보면 충분한 현금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확실한데 끊임없이 세계 주요 도시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면서 2025년까지 총 100개의 매장을 내겠다는 계획을 호언장담하는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중동의 마피아 또는 인도의 유명한 재산가가 그에게 돈을 대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니라브 모디가 실제로는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지만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금을 끌어와서 이를 메꾸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니라브 모디의 회사는 실제로 지속적인 손실을 보고 있었다. 이를 메꾸기 위해 니라브 모디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첫 번째 방법은 해외 자회사를 설립하여 이들 회사끼리 같은 물건을 반복적으로 사고팔아 매출과 이익을 부풀리는 방법이었다. 그는 껍데기뿐인 회사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바베이도스, 모리셔스, 키프로스 등 세계 여러 곳에 세운 후 이들 회사끼리 다이아몬드를 계속 샀다 팔았다 하는 거래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상당 부분 부풀려졌고, 고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보석을 사겠다는 ‘호갱님’에게 팔려 나갔다. 이렇게 확보된 현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니라브 모디가 빼돌렸다.
 
두 번째 방법은 더 대담했다. 인도의 국영은행 중 하나인 펀자브국영은행(PNB, Punjab National Bank)의 실무자들과 짜고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대출받아 사용한 것이다. 인도 당국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파이어스타 다이아몬드는 뭄바이에 소재한 PNB 지점에서만 집중적으로 대출을 받았는데, 그곳에 근무하는 2명의 직원에게 주기적으로 뇌물을 주고 대출 시 필요한 담보 제공을 면제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불법 대출은 약 6년간 계속되었다.
 
뇌물을 받아먹던 PNB 직원 중 한 명이 은퇴하고, 새롭게 해당 업무를 맡게 된 직원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후였다. 자그마치 1,100억 루피(약 1조 8천억 원)에 달하는 돈이 담보도 없이 대출된 것이었다. 니라브 모디가 단 한 푼의 담보도 제공하지 않았으니 만약 돈을 갚지 않으면 그 모든 손실을 PNB가 떠안게 되는 상황이었다. 주식회사도 아닌 작은 개인 회사가 어떻게 이리 큰 금액을 빌릴 수 있었는지, 국영은행의 작은 지점 하나에서 엄청난 규모의 부정행위가 이뤄지는 동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는지...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감쪽같이 사라진 모디, 런던 한복판에서 발견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인도 언론에 니라브 모디의 사기 행각이 일제히 보도되고 인도 전역에 위치한 그의 사업장에 경찰과 세무 공무원들이 들이닥쳤지만 모디와 그 가족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권력층으로부터 수사 소식을 미리 전해 들은 그의 가족은 정리할 수 있는 재산을 급하게 정리한 뒤 인도를 떠난 것이었다. 홀연히 사라진 니라브 모디가 뉴욕에 있다는 둥 앤트워프에 있다는 둥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9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런던에 있는 자신의 매장이 입주한 건물의 펜트하우스에서 버젓이 잘살고 있었다.
 
그가 런던에 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그를 발견했고, 2019년 3월 결국 니라브 모디는 영국 경찰에게 체포된다.  니라브 모디를 추방해서 인도로 보내 달라는 인도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 현재 런던에 수감된 니라브 모디는 인도 송환을 피하기 위해 몇 년째 법정 투쟁 중이다. 자신은 정치범이며 인도로 돌아갈 경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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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텔레그래프 기자에게 포착된 니라브 모디
출처 - <텔레그래프>
 
PNB가 입은 막대한 손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정부가 나서서 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 푼이 아쉬운 인도 정부의 입장에서는 빈곤퇴치나 교육, 보건 등 필수 분야에 사용되어야 할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은행을 살리는 데 쓰게 된 것이다. 국영은행으로부터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던 사업체가 무너지고 난 후 그 피해를 고스란히 평범한 국민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느슨하고 부패한 인도의 금융 산업, 특히 국영은행들은 이러한 ‘신사복을 입은 도둑’을 막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아니 어찌 보면 박봉에 시달리며 정치적인 압력에 휘둘리는 국영은행들이 암묵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이러한 사기꾼들과 협업한 것이라고 하겠다.
 
인도의 은행에서 2014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3년 동안 발생한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무려 1만 2,000건이 넘는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보도되었다.  은행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와 체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지적이 계속되지만, 정부의 부족한 개선 의지와 노력으로 인해 금융시스템 개혁의 결실은 요원한 일인 듯하다.
 
사족.
니라브 모디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메훌 초크시도 지금 인도를 떠난 도망자 신세다. 자금 세탁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되어 있는데, 2017년에 대서양의 작은 섬나라인 앤티구아바부다(Antigua and Barbuda)에서 시민권을 받은 후 몇 년째 도피 생활 중이다. 인도의 사법권이 미치기 더 어려운 쿠바로 도망가려고 중간 기착지인 도미니카에 밀입국하던 중에 발각되어 복역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보석을 허가 받아 앤티구아바부다로 돌아왔다. 그나마 작은 섬나라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외출도 가능한 상황이니 영국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조카보다는 쬐끔은 행복한 신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21
    모모모09.22 22:12댓글

    정보감사합니다


    .

  • 30
    차트꾼09.23 01:43댓글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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