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CCTV 화면. [독자 제공]](/news/photo/202408/211665_214819_2047.png)
최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형 사고가 난 가운데, 올해 발생한 전기차 화재 24건 중 절반 이상이 주차 중이거나 충전 중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멈춰 있는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화재의 경우 배터리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기술인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만 고도화해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22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24건으로 나타났다. 주차 중 화재는 14건(58.3%)이고, 충전 중 화재는 5건(20.8%)으로 나타났다. 주행 중이 아닌 상황에서도 화재가 발생하는 현상은 전기차의 고용량 배터리의 취약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소방청 통계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뚜렷하게 확인된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39건으로 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 화재는 67건이었다. 이 가운데 주차 중 발생한 화재는 36건, 충전 중 26건, 정차 중 5건이 발생했다. 충전 중 발생한 화재는 2021년 4건에서 2022년 9건, 2023년 13건 등으로 증가했다.
![6일 충남 금산군 금산읍 한 주차타워에 주차돼 있던 전기차에 불이나 소방대원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금산소방서 제공]](/news/photo/202408/211665_214820_211.jpg)
◇ 배터리 특유의 '열 폭주', BMS가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전기차는 보통 차량 하부에 배터리 팩이 위치해 있다. 이 배터리 팩에는 수백에서 수천 개의 리튬 배터리 셀이 들어있는데, 주로 배터리셀 내부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의 분리막 손상, 과열, 외부 충격 등의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한다. 배터리 셀 자체가 불량이거나 도로에서 차량 방지턱을 넘을 때 차체 하단 배터리 팩이 손상되는 경우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전기차는 하부 배터리 팩에 집중적인 충격을 받을 경우 배터리가 손상돼 화재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운행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에서 가장 위험한 점은 리튬 이온 배터리 특유의 '열 폭주' 현상이다. 충격으로 한 묶음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면 다른 묶음으로 옮겨 붙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 온도가 급속도로 치솟아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차 중 전기차의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으로 BMS 고도화를 제시하고 있다. BMS는 배터리를 전체적으로 관리·보호하는 '두뇌'인 동시에 자동차가 배터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제어 정보를 제공한다. 배터리 팩 안에 탑재돼 고전압 배터리의 전압·저항·내부온도를 기록하고, 이상 여부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셀에 이상이 생긴 부분에 대한 코드를 차량 메모리 장치에 입력하고 경고 알림을 띄우기도 한다. 전기차 동력을 끊거나 이어주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EV 릴레이에도 관여한다. BMS가 과충전이라고 판단하고 차량제어장치(VCU)에 신호를 보내면 VCU가 릴레이를 차단하는 식이다.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기차 화재 대응을 위한 안전관리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송준호 전자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전지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수십억 개 중 1개는 제작 결함이 있을 수 있다”며 “배터리 안의 수천개 셀 중에 하나라도 5~10년 사이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잘 걸러내고,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박재정 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전기전자과장 또한 “(전기차 화재 예방의) 결론은 BMS가 될 것”이라며 “문제는 자동차 업체가 일정 성능 이상 가진 BMS를 탑재하도록 하는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BMS 인포그래픽 [현대자동차그룹 제공]](/news/photo/202408/211665_214821_2116.jpg)
순식간에 온도가 치솟는 배터리 열 폭주를 BMS가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일까? 이에 관해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주차·충전 중 화재는 멀쩡하던 배터리가 0.1초만에 이상이 생겨서 폭주하는 것이 아니고 그간 쌓인 충격이나 노후화 등의 누적되어서 배터리가 조금씩 손상되기 시작하다가 순간적으로 열이 오르고 결국 화재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교수는 "BMS가 고도화되면 짧게는 몇시간에서 길게는 하루나 이틀 전에 특정 셀이나 모듈이 다른 배터리와 비교해 전압과 온도가 다른 것을 감지할 수 있다"며 "몇년 전 성수동 테슬라 공장 앞 화재가 바로 그런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차량은 경기 양평군에서 전원 차단 후 경고가 이미 떴고, 차주는 견인해서 정비센터로 이동했다"며 "늦은 시간이어서 센터가 문을 닫아서 그 앞에 주차를 하고, 전화 연락을 취하는 중에 차량 하부에서 굉음과 함께 불이 난 사례로 최소한 3~4시간 이전에 BMS가 경고했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전기차의 열 폭주를 사람의 감기와 비교했다. 그는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온다고 바로 앓는 것이 아니고, 열이 조금씩 오르다가 시간이 지나서 심하게 몸살을 앓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청라 벤츠 화재와 같은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우선 지하 주차장에서 즉시 견인 가능한 차량과 비상연락망 등의 시스템을 보강하고. BMS 고도화를 통해 보다 빠르게 감지해서 화재 발생 전에 문제가 발생한 셀이나 모듈을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기차가 배터리를 충전하는 모습이다. [픽사베이 제공]](/news/photo/202408/211665_214823_2158.jpg)
◇ 고도화 위해 차주의 'BMS 데이터 제공 동의'가 관건
국내 대표 배터리 전문가인 윤원섭 성균관대학교 에너지학과 교수도 "배터리 화재가 누적된 충격이나 이상으로 인해 나타나는만큼, 데이터를 미리 확인하면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발화 위험을 포착할 수 있다"며 "비행기에 블랙박스가 있는 것처럼 전기차들도 BMS를 통해 데이터를 다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화재를 유발하는 온도, 전압, 외부 충격 등을 감지하고 자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클라우드 서버 등을 활용해 데이터를 전송·분석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용자 스마트폰으로 위험 요소를 전달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서 "이런 것들을 법제화·규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차량 소유주의 BMS 데이터 제공 동의 여부다. 소비자로선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주의 동의가 없으면 완성차 업계의 BMS 기술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충남 금산군에서 발생한 기아 EV6 화재 당시 BMS는 사고 전에 자체 경보를 울렸다. 사후 조사 결과 밝혀진 내용이다. 하지만 이 차량은 차주가 BMS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아 제조업체와 차주 모두 제때 경보를 받지 못했고, 적절한 조치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도 최근 열린 전기차 안전 관계부처 회의에서 차주의 BMS 정보 제공 동의를 필수화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앱처럼 차량 소유주가 전기차 BMS의 주요 정보를 완성차 업체에 필수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미국의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는 초기 설정 때 BMS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차량 작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보 제공 동의 관련 규정이 없다. 현대자동차·기아는 15일 배터리 이상 현상을 감지하면 이를 차주와 제조사에 즉시 통보하는 BMS 기술을 앞으로 출시하는 모든 신형 전기차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차주의 정보 제공 동의가 없으면 차량에 최신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제조사가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 대처에 한계가 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지난 19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BMS 정보 제공 동의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BMS 기술은 전기차 안전성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인 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전기차 안전관리 강화 방안을 통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관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BMS의 화재 예방 기능 고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안"이라며 "전기차 운전자들이 데이터 제공이 배터리 안전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전세계 BMS 특허 1위" LG엔솔 기술력 주목
한편, BMS는 K-배터리가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는 분야다. 전 세계 배터리 기업 중 BMS 관련 특허가 가장 많이 출원한 곳은 LG에너지솔루션으로 확인됐다. 특허정보조사전문업체 WIPS가 상위 10개 한중일 배터리 기업의 BMS 관련 특허를 전수 조사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이 5475건의 특허를 출원해 압도적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개 국가(한국, 미국, 유럽, 중국, 일본)에 등록·출원된 특허 수 기준이다.
이는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의 BMS 관련 전체 특허 수(약 7400개)의 약 73%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한 전수 조사 대상 기업의 BMS 관련 전체 특허 수(약 1만3500개)의 약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가별로는 중국 기업들의 BMS 특허 수 보다 1.2배 많으며, 일본 기업들의 BMS 특허 수 보다 3.5배 많은 수치로 나타났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분사한 2020년 이후 BMS 관련 특허 출원 수가 크게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800개 안팎의 BMS 관련 새로운 특허를 출원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 기업 전체 특허 수의 약 87%에 달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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