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인구 2000여명의 석포면에는 전 세계에서 아연의 주요 생산지로 손꼽히는 석포제련소가 있다. 석포제련소의 주인은 영풍이다. 경북 포항에 포스코가 있듯이 영풍하면 석포, 석포하면 석포제련소로 통한다. 석포면에서 영풍을 모르면 간첩이다. 석포제련소를 짓기 전 영풍은 아연 광석 수출사업자였다. 지난 1970년 석포제련소를 준공한 영풍은 본격적으로 아연괴 등 비철금속 제련업에 뛰어들었다.
석포제련소에서는 아연괴를 비롯해 황산, 전기동, 황산동 등 각종 부산물을 뽑아낸다. 아연괴 연간 생산능력은 40만MT(미터톤)으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다. 이 밖에 황산 72만8000MT, 황산동 1830MT, 전기동 3600MT, 은부산물 4만6000MT 등의 생산능력을 보유했다.
영풍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석포제련소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석포제련소가 멈추면 그야말로 비상이다. 이런 석포제련소의 일부 설비가 5개월째 멈춰 있다. 이에 따른 후폭풍은 이번 분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석포제련소 2분기도 어렵다
올해 1분기 석포제련소의 가동률은 64.69%였다. 평년 같으면 80%를 훌쩍 넘겼지만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아연괴 생산실적은 6만4686MT으로 지난해 1분기의 8만4913MT 대비 약 24% 감소했다.
생산량이 급감한 것은 일부 공정이 일시멈춤 상태이기 때문이다. 영풍 관계자는 "인명사고로 부분 조업 중단 명령이 내려진 후 일부 설비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삼수소화비소(아르신)를 흡입하는 사고로 사망했으며 다른 직원 3명도 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다. 이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불가피하게 일부 설비도 멈췄다.
안전사고로 생산차질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11월 폐수배출 등으로 10일간 석포제련소가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2021년 말 가동률이 70%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2021년 때보다 타격이 크다. 관계당국의 조사로 5개월째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분기 생산량도 평년 대비 부진할 개연성이 크다.
석포제련소의 생산차질로 올 1분기 영풍은 102억원(개별 재무제표 기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1분기 영업손실을 낸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올 1분기 영업수익은 2919억원으로 전넌동기 매출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수출실적이 지난해 1분기 2206억원에서 올해 1411억원으로 급감한 것이 원인이다.
중국산 아연이 시장에 많이 풀리면서 업황도 좋지 않다. 아연의 국제시장 가격은 올 1분기 MT 당 2649달러(약 359만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124 달러(약 423만원)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
영풍은 2021년부터 매년 1000억원 규모의 환경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투자비와 비우호적인 영업환경, 조업차질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1분기 실적이 악화됐다.
/자료 제공=영풍
본업 악화 '고려아연' 존재감 부각
본업인 제련사업이 주춤한 사이 영풍의 손익구조에서 고려아연의 존재감이 커졌다. 영풍은 1분기 영업손실에도 순이익 19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영업손실분을 영업외수익으로 상쇄한데 따른 것이다. 배당금 수익 항목이 포함된 금융수익이 377억원에 달했다. 고려아연이 지급한 배당금(263억원)이 한몫 했다.
고려아연의 3자배정 유상증자로 영풍의 고려아연 소유 지분은 2019년 26.91%에서  현재 25.15%로 감소했다. 영풍은 지분율 회복을 위해 현금이 생길 때마다 고려아연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 올 1분기에도 고려아연 주식 2만2443주를 100억원에 추가 취득했다.
주식 매입으로 영풍이 받는 배당금도 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영풍은 고려아연 지배에 따른 영업외수익으로 버티는 구조로 사실상 투자회사나 다름없다"며 "석포제련소 정상화를 위한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