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도 울고 가는 한국 증시

7
스윙차단
작성: 2024.03.04 01:11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가운데 자본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외국 투자사의 한국 리포트가 있다.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 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12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한국-이제 좀 그만(South Korea-enough is enough)’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보고서다. ‘이너프 이즈 이너프(enough is enough)’는 영어사용자들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더는 못 참겠다 싶을 때 단호하고 화난 목소리로 외치는 말이다.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는데, 질렸다. 이제 그만해!’라는 의미다.

14년 동안 이 헤지펀드의 아시아(일본 제외) 지역 투자전략을 맡아온 조너선 파인스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악명높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거버넌스)에 있다고 지적한다. 소수수주(일반주주)에 대한 고질적인 부당한 취급(mistreatment)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가 지속되는 메카니즘으로는 기업을 지배하는 소수의 재벌가의 지나치게 큰 정치적 영향력과 큰 규모의 재산에 적용되는 매우 높은 상속세율 등을 꼽았다.

악명 높은 기업 지배구조가 주가 저평가 원인
헤르메스는 수준 이하의 법률과 규정 덕분에 한국의 지배주주들은 기발한 방식을 동원해 자신들에게 많은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반면 일반주주들은 자신들의 몫을 찾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헤르메스는 한국의 지배주주들이 회사 수익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방법과 수단을 자신들이 피해를 본 경험까지 녹여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주가 상승 바라지 않는 ‘이상한’ 한국 기업들
높은 상속세 때문에 대주주들은 자신이 통제하는 회사(특히 지주회사)의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보유한 현금이 풍부하며 꾸준히 이익을 내는 기업조차 배당성향이 매우 낮은 이유다. 기업 경영진은 주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통념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배당을 적게 줘 주가를 낮추는 게 대주주의 이익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낮은 배당률로 인해 현금이 더 필요하면 지배주주는 자신이 통제하는 회사로부터 현금을 뽑아낼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그만이다. 자신이 통제하는 또 다른 회사와의 특수관계자 거래를 통해 모회사의 자산을 이전할 수 있다. 특수관계자 거래는 일반주주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거래가 성사되고 한참 지난 뒤 연간 재무제표의 각주 정도로만 공개될 뿐이다. 이런 거래를 통해 지배주주는 회사에서 현금을 뽑아낼 뿐 아니라 불공정한 가격 책정을 통해 일반주주가 가진 부를 지배주주에게 이전할 수도 있다.

일반주주의 부를 이전해가도 ‘적법’
지배주주는 주식 가격을 떨어뜨리고 일반주주들이 자신에게 보유한 주식을 팔도록 강제할 수도 있다. 일반주주는 지배주주가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더 비싸며, 부채가 더 많은 관계 회사의 주식과 자신이 처음에 투자한 주식을 강제로 교환해야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주식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지배권이 사라지며 손해를 보게 되지만 이 모든 게 한국에서는 합법적이다.

이런 주식 교환이나 신규 주식 발행 과정에서 한국 증시 투자자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시점, 예를 들면 자신의 주식 가격이 내재가치에 비해 특히 저평가된 시점에 주식을 팔도록 강요당하게 된다. ‘오바마의 현인’ 워런 버핏은 주식 시장은 인내심 없는 자의 돈을 인내심 있는 자에게 이전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단기적으로 주식 시장은 투표 기계와 비슷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정교한 저울 같다고 말했다. 길게 보면 증권시장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가치투자 아버지 그레이엄의 이론도 한국선 무용지물
하지만 헤르메스는 이것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이 만약 한국의 주식을 산다면 장기 투자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주식 매각 시점을 주식시장의 투자자가 아니라 지배주주가 결정할 수 있다.”

어떤 투자자는 이처럼 일반주주에 일방적으로 불공정한 사례에 대해 법원에 가서 이사가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물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상법에는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이다. 이사가 주주에 대해 신의·성실을 다 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 이사가 일반주주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방향으로 행동하더라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추천1
비추천0
신고신고
    Go to topAdd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