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기자님 페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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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자차단
작성: 2022.12.08 17:00
이전에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님의 을 읽고 소개가 너무 맘에 끌려서 책을 읽었다가 나중에 번역까지 하게 된 사연이 있다.

이번에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정말 잘 쓴 추천사다. 나보고 쓰라고 해도 이렇게는 못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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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져 있던 찰리 멍거의 사고 체계를 파악하는 최고의 기회

1. 워런 버핏의 조언자 찰리 멍거

찰리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다. 워런 버핏은 오래전부터 그를 ‘파트너’로 칭했지만 버핏과 멍거의 관계는 일반적인 ‘파트너’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멍거가 맡은 부회장이라는 자리는 버핏으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그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버핏이 하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그와 비슷한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멍거와 버핏의 관계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보다는 ‘조언자’ 관계에 가깝다.

버핏은 자신의 의사결정과 사고방식에 ‘오류’가 없는지 파악하기 위해 찰리 멍거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한다. 물론 투자 의견을 시시때때로 나누고, 함께 투자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버핏에게 멍거는 ‘사고의 오류를 잡아줄 수 있는 친구’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하다.

버핏은 멍거 덕분에 벤저민 그레이엄 스타일의 투자법의 한계를 파악하고, ‘훌륭한 기업’을 찾아내어 장기간 동행하는 스타일의 투자법을 확립했다. 1964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대한 투자가 그 첫걸음이었고, 1972년 씨즈캔디에 대한 투자는 현재의 ‘버크셔 제국’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2. 격자틀 모형

찰리 멍거의 독특한 사고 체계를 ‘격자틀 인식 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이라고 부른다. 그는 시장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를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 수학, 철학, 심리학을 포함하는 더 커다란 지식 체계의 일부”로 바라보았다. 그는 수학을 전공했고, 전쟁 때는 기상학 장교로 복무했다. 버핏이 숫자를 잘 다루고 기억력이 뛰어난 천재이기는 해도, 경제경영을 전공한 그가 멍거처럼 고차원적인 미적분을 풀거나 물리학, 생물학을 깊이 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격자틀 인식 모형은 다양한 학문에서 분석 도구와 방법론을 빌려와 하나로 꿰맨 사고의 틀이다. 소위 ‘통섭’을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해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멍거는 ‘행동경제학’이 부상하기 전부터 인간의 심리가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멍거는 당대의 심리학을 깊이 이해하고 더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인 ‘스탠리 밀그램 실험’은 단순히 인간이 얼마나 권위에 복종하기 쉬운가를 밝히는 실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실험에 그 이상의 여러 요인이 개입되어 있음을 멍거는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다.

또한 ‘문제를 뒤집어서 생각하는 방법’은 후대의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제안한 ‘Via Negativa’ 기법과 이어진다. ‘Via Negativa’ 기법은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방법론 중 하나이며,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로부터 이어지는 사고 기법이기도 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을 추종한 멍거가 얼마나 진지하게 각종 학문을 연구해 의사결정에 활용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오판의 심리학

인간의 의사결정 방식을 깊게 공부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어떤 우위를 줄까? 인간의 의사결정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사고방식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멍거는 다학제(multidisciplinary) 관점에서 각종 학문을 공부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여러 이론이 다른 학문들과 괴리되어 있거나, (물리학 흉내를 내면서) 지나치게 엄밀함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경제학이 현시대 투자 ‘이론’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에, 그 한계점을 파악한 투자자는 판단력에서 우위를 지닌다.

멍거는 ‘통계적 우위를 안겨주는 통찰’이 중요하며, 심리학이 그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그레이엄의 핵심 사고 체계 중 하나인 ‘안전마진’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그레이엄은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달리) “가치는 하나의 값으로 제시할 수 없으며 범위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안전마진이란 단순히 가치보다 싸게 사는 것을 넘어서서, ‘유리한 확률분포에서 베팅’하며, 아무리 유리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으니 ‘분산해서 베팅’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공부하는 것은 투자의 첫걸음이다. 우리가 좀 더 확실하게 ‘유리한 확률’에 있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투자자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내 사고방식에는 실수가 없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투자의 초과수익은 내가 실수를 적게 하면서 타인의 실수를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다. 멍거가 말한 ‘오판의 심리학’은 내 사고 체계의 오류를 점검하고 타인의 사고 체계의 오류를 파악함으로써 투자자가 더욱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해준다. 그러므로 ‘그릇된 판단’에 정통하면서 또한 ‘성공한 투자자’인 멍거는 버핏에게 있어서 축복과도 같은 존재다.

4.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방법, 학습 기계

버핏과 멍거는 ‘학습 기계’ 개념을 강조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결국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자원을 평범한 사람이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 방식은 우리도 배워서 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단지 태생적으로 가진 똑똑함, 인적 자원, 재산 등을 활용해서 성공하려 했다면 그들은 왜 그리 열심히 책을 읽었을까? 우리는 책을 통해서 역사상 가장 현명했던 사람을 친구로 둘 수 있고, 역사상 가장 똑똑했던 사람의 실패담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경험은 평범한 사람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버핏의 성공은 ‘모두 학습 덕분’인 듯하다고 멍거는 말했다. “인류가 발명 기법을 발명하고 나서 비로소 문명이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듯, 투자자는 ‘학습 기법을 학습’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워런 버핏이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되게 한 그 ‘학습 기법’을 멍거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찰리 멍거의 사고 체계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직접 쓴 책이 없고 그의 연설을 모은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아쉽게도 국내 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직접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비롯한 웨스코, 데일리 저널의 주주총회를 보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멍거의 전반적인 사고 체계를 살피기는 어렵다.

《찰리 멍거 바이블》은 그의 주요 강연과 주주총회 질의응답의 핵심을 훌륭한 두 저자분이 엮고 해설한 책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찰리 멍거의 사고 체계를 파악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행운이었고 여러분에게도 그럴 것이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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